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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

10년만의 판화

by 믹스 2022. 2. 27.

#2210

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본 유학시절 대학에 편입해서 졸업 때 판화 전공으로 졸업을 했었다. 당시에는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지만 졸업하면서 손을 놓게 되었는데 작업공간 문제도 있고 실크스크린을 주로 했었던 나로선 집에서 너무 손이 많이 가기에 그만두게 된 것도 나름의 이유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목판화라도 꾸준히 해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꾸준함이 부족하다.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갑자기 판화가 하고 싶어 졌는데 프레스가 문제였다. 수작업만으로도 기술 숙련도에 따라 훌륭한 판화 작업이 가능한데 일단 나는 공백 기간도 그렇고 그런 작업 능력은 없으니 어느 정도 일정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프레스가 가지고 싶어 졌었다.(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뭔가를 할 때 장비에 대한 욕구가 넘쳐난다는 걸..) 그렇게 이런저런 프레스를 찾아다니다 집에서 가능한 미니 프레스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백만 원이 훨씬 넘는 프레스기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Open Press Project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Open Press Project – The 3D-printed printing press

Use printmaking for your art whenever and wherever you want. This little 3D-printed press fits into your backpack and gives you the ability to print outside, on vacation or in your living room! We are on a mission to make printmaking accessible to everyone

openpressproject.com

제작된 프레스기를 판매도 하지만 3D 프린터로 최대 7.5x23(cm) 판형까지 작업이 가능한 프레스기를 스스로 만들어 쓸 수도 있도록 제공하고 있었다. 명함 크기 작업에 딱 좋은 사이즈다. 이거면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도 나만의 프레스를 가지게 된다는 생각에 3D 프린팅 자격증을 가진 지인에게 부탁해 한대를 출력받기로 했고 조금씩 재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어제 리놀륨판, 고무판, 수성잉크, 롤러부터 잉크까지 기본적인 재료들이 도착했고, 조각도부터 종이 등등 눈앞에 재료들이 모이니 참지 못하겠더라는.. 그리고 파고 바르고 찍어 봤다.

기본적으론 유성잉크가 발색이 좋은 편이고 깊은 색감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하는 편이지만, 집에서는 수성잉크를 사용하기로 했다. 수성잉크를 사용하는 건 뒷정리가 조금 수월하기 때문인데 집안에서 유성을 사용할 경우 냄새부터 뒷정리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서다. 이번에 사본 잉크는 스피드볼의 Supergraphic Black, Crimson. 그리고 스타터 팩으로 팔고 있기에 구입 당시 딸려온 수성잉크(소분 형식)

Speedball - SUPER GRAPHIC

동판화도 부식시키거나 이런저런 걸 생각하면 작업실을 얻을 정도의 작업이 아닌 다음에는 집에선 이 정도의 볼록 판화가 딱 좋을 것 같다. 크기도 아직은 큰 작업은 힘들고 작은 것, 최소 5x5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내가 어떤 식으로 판화를 했었는지 기억도 가물거리더라는. 근 10년만의 판화 작업이다. 강산도 변하는 시간만큼의 공백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고, 또 파고
롤러 없이 찍어본 결과 역시 얼룩이 심하다
역시 롤러가 있어야 한다
롤러로 잘 바르고 찍으니 확실히 틀리다

확실히 예전에 가지고 있던 실크스크린용의 두꺼운 종이에는 일정한 압력을 제대로 가하지 않으면 여기저기 얼룩진 부분이 나오게 되는데 잉크의 양과 힘 조절에도 기술이 필요지만 수작업의 맛이라면 맛이겠지. 전체적으로 먹색의 색감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수정할 곳들을 수정하고 종이도 좀 얇은 갱지로 바꿔서 해보는 등 나름 재미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역시 수작업 공정은 힘들지만 결과물을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은 다른 표현 방법이 없다. 그저 즐겁다. 나중에 프레스 준비가 완료되면 에디션용으로 작업해 봐야 할 것 같다. 무언가 모자란, 건조한 나의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활력이 되는 요소가 될 것 같다.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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